로마만큼이나 여전히 현재를 지배하는 국가가 또 있을까? 고대 로마에 대한 끈질긴 사랑의 대가, ‘로마인 이야기’를 썼던 시오노 나나미는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의 궤적을 더듬는 수밖에 없듯, 하나의 국가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로마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인문학을 지배하고, 장대한 서사는 소설의 소재로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심지어는 세계 최강 기업의 면모를 갖추려고 하는 기업에게는 경영학적으로도 벤치마킹되고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로마"인 고대 도시 로마는 영화와 드라마의 영역에서도 숱하게 소재로 응용되어 왔다. 역사를 좌지우지한 로맨스의 주인공 줄리어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를 다룬 작품을 제외하더라도, 멀리는 1976년도 BBC 작품 '클라우디우스', 2003년도 영국 이탈리아 합작 드라마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가깝게는 2005년도 ABC의 작품 '엠파이어'와 2010년 Starz의 검투 활극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시리즈 등이 로마에 매달린다. 하지만 로마의 다채로운 면을 드라마적인 재미로 이끌어낸 획기적인 작품은 바로 2005년 8월 28일 HBO에서 첫 방영을 시작한 대작 '로마'이다.
미드 '롬’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통해 텔레비전 영화보다 더한 TV 드라마를 증명해냈던 미국 최대 유료 케이블 채널인 HBO의 또 다른 야심작이다. 1억 달러를 넘나드는 제작비의 ‘롬’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웅장한 스케일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대를 보여주지만, 정작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은 13군단의 일개 병사 루시우스 보리누스와 타이투스 풀로이다. 물론 요즘 시대극의 트렌드가 주변 야사를 통해 영웅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롬’은 야사에만 집중하다 영웅담의 끈을 놓쳐버리는 괜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보리누스와 풀로는 갈리아 정벌을 완성한 시저의 로마 시대를, 콜로세움에 둘러 앉아 살육과 야심으로 점철된 검투사의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의 시선으로 생생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타락해가는 로마를 다시 재건하려는 시저를 보필했던 보리누스와 단순무지하고 순박한 철학으로 무장했던 풀로의 이야기가 넘실댔던 ‘롬’은 시오노 나나미가 그토록이나 천착했던 ‘로마인 이야기’의 한 챕터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로마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건실한 효과를 보여준다. 드라마의 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의 힘이다. 시저의 시대를 넘어 영민한 아우구스투스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시작되는 두 번째 시즌은 재미를 넘어 시대극 팬들에게는 각별함의 영역에까지 도달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장대한 스케일과 대중서사적 스토리텔링을 다시 한 번 실현하느냐로 관심을 모았던 HBO의 '롬'은 2005년 HBO에서 ‘시즌 1’을 12개의 에피소드로 방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뒤, 2007년 재개된 ‘시즌 2’에서는 10개의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안타깝게 종영의 순서를 밟는다. 2년 계약으로 진행되었던 BBC와의 공동제작 계약이, TV 드라마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대했던 제작비 부담을 BBC가 감당할 수 없어 연장계약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 캔슬의 주된 이유이다.
롤링스톤의 션 우즈는 드라마 '롬'에 4점 만점에 3.5점의 평점을 부여하면서 "고대 로마를 다룬 에픽 마스터피스"라 칭했고, LA 위클리의 로버트 아벨레 기자는 "TV 드라마 역사상 가장 풍성한 볼거리의 드라마"라고 평했으며, 뉴욕 포스트의 린다 스테이시는 "자신은 드라마 '로마'의 노예에 다름 아니다"고 썼다.
4,000여벌의 의상과 1,250벌의 신발과 샌들, 250여벌의 그물 체인 갑옷에 각종 헬멧과 장갑, 의상 및 소도구등이 메탈 디자이너 루카 지암파올리의 지휘 아래 고증에 고증을 동원해서 공을 들인 작품이다.
프라임 타임 에미상에 총 여덟 차례 노미네이트되어 분장, 헤어스타일, 의상 등 네 차례 수상에 성공했다. 로마 시대의 사실적인 재현과 강도 높은 폭력과 성애의 묘사로 19금 딱지를 달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