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07-2008 드라마 시즌은 작가 파업이라는 악재와 함께 전반적으로 대형 히트작이 부재한 상태에서 마무리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 난관 속에서도 2006년의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혜성처럼 나타나 국내 시청자들에게 아이콘으로 사랑받은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2007년도에 CW 채널에서 가장 먼저 풀 시즌을 주문받은 '가십걸'이다.
학군 좋기로는 미국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뉴욕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가십걸'은 한마디로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뉴욕 부유층 삶의 하이스쿨 마이크로 월드"이다.
혹 뉴욕 맨해튼에 발을 디뎌본 사람이라면 놀랍게 체감할 수 있듯, 가로 세로 바둑판 모양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마천루는 세계의 어떤 도시 사람이라도 모두 촌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도 '간택' 받은 자제들의 삶은 어떠할까. 풍문마냥 떠돌던 삶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십걸'을 보면 된다.
'가십걸' 오프닝 시퀀스 (XO XO 가습기~!)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셀 수 없는 구두 컬렉션을 장만하기 위해 그나마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가십걸'의 아이들은 그럴 필요 조차도 없다. 찌질하게 살면 오히려 부모님들께 누가 될 터이니, 태어나면서부터 '은수저를 입에 물고 있었던' 아이들은 격에 맞춰 쓰는 게 스타일이고 또래들 사이의 공감대에서 빠지지 않는 길이다.
쇼핑과 파티와 술이 난무하지만, 원래부터 그리 해야 했던 것이니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오히려 문제는 돈의 힘을 털어내고 사랑과 감정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이다. 거금을 떼어 먹는 것은 괜찮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배신하게 될 때, 곧 씻지 못할 상처가 생겨난다.
사실 이 드라마는 '섹스 앤 더 시티'에 비해 드라마적인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볼거리도 좀 시큰둥한 감은 있다. 미국의 청춘 드라마라면 반드시 그려내야만 하는 십대들의 명민함도 '도슨의 청춘일기'와 같은 드라마에 비해 아주 많이 약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돈과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에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성장기로 치면 또 전개가 그렇게 서툴지만은 않다. 영화 '위험한 관계', 그 영화를 현대의 틴에이저판으로 리메이크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그려내는 인간 감정의 치부를 이 드라마도 비슷한 세트 속에서 그리고 있다.
2007년 9월 19일 첫 방송을 내보낸 '가십걸'은 네 번째 시즌까지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다, 다섯 번째 시즌에서 하락하기 시작한 시청률을 반등시키지 못 하고, 2012년 9월 17일 여섯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며 시리즈를 끝마쳤다.
'가십걸' 시즌 6 프로모션 트레일러
2008년 뉴욕 매거진은 '가십걸'을 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치켜세웠으며, 2009년 롤링스톤은 TV 드라마 사상 가장 핫한 쇼로 '가십걸'을 뽑았다. '가십걸'로 유명해진 배우들은 피플, 롤링스톤, 나일론, TV 가이드, 뉴욕 포스트, 보그 등등의 커버를 장식했으며, AOL TV는 '가십걸'을 최고의 학교 드라마 20위에 올려놓는 동시에 길티 플레저 TV 드라마 4위에 랭크시키기도 했다. 2012년 1월 26일 방영된 '가십걸'의 100번째 특별 에피소드에서는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세트장을 방문해서 '가십걸'이 뉴욕 경제에 끼친 영향에 대해 치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