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유니버스, 미드 파이어플라이

무수히도 많은 영화나 문학작품, 음악, 드라마 등이 세상에 나왔다가 날개 한번 퍼덕거려 볼 일도 없이 사라져간다. 그중에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을 듣는 작품이 꼭 있게 마련인데,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저주받은 걸작을 알아보는 눈이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가는 것 같다. 뭐, 이 걸작에 정말 단어 뜻대로 거창한 것부터 해서 참 쓸 만한데도 묻혀버린 것까지 다 포함시켜 보기로 하자. 여하튼 눈으로 보기에 줄어들었을 뿐이지, 그런 불운을 겪은 문화상품들은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 기록 갱신이 국가적인 과업이라도 되는 양 소비자들을 독려하는 느낌마저 주는 것에도 엇나가는 심정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해도,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작품성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상업성 결여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현상이 간혹 눈에 띄는 것도 반갑지 않기는 똑같다.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떠나, 한 번이라도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참 기이한 일입니다. 가령 언론보도 과정에서 얼마나 곡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수준을 말하는 영화감독을 보면 난감함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런 편견에 눈이 가려지다 보니, 저주받은 걸작이다, 관객이 별로 안 들었거나 시청률은 낮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가 들리면 더럭 겁(?)부터 나기에 이르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

 

2002년에 FOX에서 방영되다가 에피소드 11개 만에 조기 종영되어 버리고 만 '파이어플라이'도 하마터면 그런 어리석은 심술에 놓치고 말 뻔한 드라마이다. '파이어플라이'는 '버피와 뱀파이어'의 제작자인 조스 웨든이 작품임에도 주관 방송사였던 FOX와의 계속되는 마찰과 낮은 시청률로 조기 종영되었지만, 후에 발매된 DVD가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2005년에는 극장판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던 드라마이다. 소위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돌하우스', '패밀리 가이' 등의 작품과 더불어 FOX에 저주받은 걸작의 산출장이라는 태그를 붙인 작품이기도 하다.

 

 

'파이어플라이' 트레일러 

 

 

사실 '파이어플라이'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지켜보면 아닌 게 아니라 스타일에 힘 좀 들어갔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 수 있다. 다소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끔씩 들어가는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이 언뜻언뜻 부자연스럽다 싶게 튀는 점도 있다. 조스 웨든과 FOX는 화면 비율서부터 충돌을 빚었다. 웨든은 와이드로 가야 한다는 걸 FOX는 TV 표준 비율로 가야 한다고 해서, 웨든이 일부러 인물들을 카메라 구석쟁이에 박아 넣고 찍으면서 결사항전을 했을 정도이다. 지금처럼 거의 다 와이드로 화면을 잡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2002년쯤이면, 게다가 공중파 채널이고 SF 드라마인데도 표준 화면비율을 고집한 FOX가 왜 그랬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또 주인공 캐릭터를 너무 어둡고 퉁명스럽게 그리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문도 돌았다.

 

그 때문에 어쩌면 이 드라마가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NBC가 아닌 자회사 사이파이에서 방영됐던 예처럼 케이블 채널을 근거지로 삼았다면 그토록 단명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파이어플라이'는 SF치고는 스케일이 아주 큰 편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역시 이 드라마는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움을 안겨준다. 연방에 맞서 싸우는 독립주의자들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더니, 이내 허망하게 제압당하는데 흩어진 세력을 규합해서 다시 어찌해 보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우주의 무법자가 되어 방랑길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 그런데 그게 이 드라마의 재미가 된다.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동료 두 명이 낡디 낡은 개똥벌레급 우주선을 집 삼아,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밑바닥 인생 몇을 모아서 밀수 사업에 뛰어들며, 대놓고 의적 노릇을 하지는 않지만 슬쩍슬쩍 공권력을 유린하면서, 패배한 자들의 생존법은 처음의 어두움과 무게에서 벗어나 점점 더 유쾌해지는 재미가 만들어진다.

 

 

 

'파이어플라이' 극장판 '서레너티' 오피셜 트레일러 

 

 

'앨리어스'에서 시드니 브리스토를 그토록 괴롭히던 숙적, 그 무시무시한 애나를 연기했던 지나 토레스가 분하고 있는 조이가 말하는 영웅의 정의는 주변 사람들을 죽게 하는 사람이다. 조스 웨든이 DVD에 담긴 제작 뒷이야기에서도 밝혔듯이, 이 드라마의 영웅은 이상을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키고 그들과 함께 가족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밀수선 세레니티의 선장이자 드라마의 주인공인 말콤 레이놀즈는 밀수하는 것 빼고는 주인공으로서 역시 도덕적 오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제인 같은 사람은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장남을 연상케 하는 거의 말종에 가까운 인물이다.

 

2517년이 배경인 '파이어플라이'는 우주선만 쌩쌩 날아다닐 뿐,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니, 오히려 더 황폐하다. 몹쓸 땅이 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태양계를 찾아가 그곳을 터전으로 삼은 인류는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지금보다도 더 척박하다. 한 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의 여러 행성과 위성에 흩어져 사는 인류는 수도 행성과 몇몇 중심 행성을 빼놓고는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며,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최강자로 중심에 선 연방은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잔학행위를 일삼는다. 중심 행성들은 예의 SF들에서 나오는 것처럼 첨단과 화려함의 극치이지만, 변두리 위성들은 19세기를 다룬 서부영화의 무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을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들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강렬하고 숭고한 이상에 고뇌하고 몸 바치는 영웅은 고사하고 생존하는 것만이 목적인 듯한 서레너티 승무원들의 비천한 인생에서 FOX는 아무런 장삿거리를 찾지 못했다. 비난을 보낸다고 달라질 FOX도 아닐 뿐더러, 그런 구매자의 요구를 바꿀 수 없고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명성을 걸치고 원망만을 안은 채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좀더 교묘하고 영악스럽게 표현할 기지는 제작진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FOX가 아닌 FOX의 자회사 케이블인 FX에서 방송되었다면 더 오래 갔으리라는 추측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ABC '캐슬'에서 작정하고 '파이어플라이'를 홍보하는 나단 필리온  

 

 

그나마  단명한 저주받은 걸작 '파이어플라이'는 다른 저주받은 걸작보다는 팬 서비스를 미흡하게라도 제공한 편이다. 팬들의 성화와 DVD가 잘 팔렸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영화로 제작되어, 드라마에서 앞으로 다루고 마무리 지으려던 이야기를 완결을 시키며, 이후 코믹북과 게임 등으로 확대재생산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원작 드라마의 '카우보이 비밥' 톤에 '최종병기 그녀'와 '28일 후'가 버무려진 것이 볼거리가 꽤 된다. 허름하던 드라마 속의 세트와는 몰라보게 달라진 세레니티 호와 강력해진 액션 덕분에 연속성에 약간의 혼란을 주거니와, 감독을 맡은 조스 웨든이 FOX에 굴복했다기보다는 바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작정하고 오기를 부린 게 아닌가 하는 데 심증이 갈 정도로 퀄리티도 한층 개선이 된 작품이다.

 

'파이어플라이'의 주연 배우였던 나단 필리온이 출연하고 있는 ABC의 인기 수사 드라마 '캐슬'을 보면 나단 필리온이 분하고 있는 주인공 소설가 리처드 캐슬의 집에는 '파이어플라이'의 각종 악세사리 및 관련 용품이 전시가 되어 있고, 극중에서도 리처드 캐슬의 입을 통해 여러번 '파이어플라이'를 언급하곤 한다. 종영된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IMDB 톱 TV 드라마 순위에서 같은 FOX의 저주받은 걸작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와 함께 늘 상위권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파이어플라이' 극장판 '세레니티' 포스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