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판 살인의 추억, 캐서린 모리스 원톱 수사 드라마 '콜드케이스'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 있는 도시 필라델피아는 지금은 뉴욕이나 보스턴, 워싱턴 등 메트로폴리스화한 인근 거대 도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옛 명성이 약간 바랬지만, 한때 미국 최대를 구가하던 도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독립혁명 선언서를 발표한 곳이고, 워싱턴 D.C 이전에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는 법과 정의의 상징 같은 도시다.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필라델피아'는 필라델피아를 무대로 삼아서 게이 변호사이자 에이즈 환자가 받는 차별을 좀더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해결되지 않은 범죄사건을 다루는 CBS의 드라마 '콜드케이스'도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필라델피아판 '살인의 추억'이라고나 할까. 그런 곳에서 미제 사건을 뜻하는 "콜드 케이스"는 미처 실현되지 않은 법과 정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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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에 소속된 형사 릴리 러시는 현재 진행중인 살인사건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어느날 우연한 계기에 미제사건 담당 부서인 콜드 케이스를 맡게 되고, 수완과 능력을 바탕 삼아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미제사건 해결 전문형사로 거듭난다. 기이하고 요상하고 뜻 모를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워싱턴 FBI 건물에 있는 팍스 멀더를 찾듯, 미제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발견됐을 때는 필라델피아 강력반의 릴리 러시를 찾는 게 거의 수순에 가깝다.


릴리는 선배 형사들에 뒤이어 두 번째로 꺼내든 칼을 허무하게 칼집에 도로 꽂아 넣는 일이 결코 없이 능수능란하게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너무나 오래된지라 때로는 과학으로 찾아낼 수 있는 증거도 남지 않은 사건을 수완 있는 형사답게 치밀한 추리력과 관찰로 풀어낸다. 그리하여 수십 년 혹은 백년 이상 된 사건의 억울한 영혼들에게 안식처를 찾아준다.

 

 

 

'콜드케이스' 오프닝!

 

 

거친 색조의 플래시백이나 시간을 오버랩 시키면서 과거와 현재의 인물을 교차시키는 기법은 'CSI 과학수사대'나 '위드아웃 어 트레이스' 등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 특유의 기법임은 차치하자. 사건이 해결되는 말미에 원혼처럼 떠도는 희생자들의 영상이 릴리 러시 형사의 곁을 스쳐가면서, 그때마다 흐르는 주옥같은, 또는 고색창연한 올드 팝들은 '콜드 케이스'의 멜랑꼴리한 성격을 규정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2010년 5월 18일 CBS에서 '콜드케이스'의 여덟번째 시즌 제작을 포기하고 캔슬을 발표하기까지 시청률은 거의 항상 10위권에 포진될 정도로 반응 또한 열렬했다.


'콜드 케이스'는 최근 미국 드라마, 특히 수사 드라마의 추세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원톱 체제를 표방한다. 아름답고 귀여운 금발의 미녀, 미소가 너무 눈이 부셔서 국내에서는 햇살 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릴리 러시 형사가 형사 콜롬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강한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모험 요소가 크고 특이한 시도에 가깝다.

 

 

전설이 된 캐서린 모리스 짤방이죠!


 

금발의 미녀가 주인공이 되려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처럼 너무너무 앙증맞고 귀여운 매력으로 승부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미국의 시청률 지상주의다. 하지만 캐서린 모리스가 분한 '콜드 케이스'에서의 금발 미녀 릴리 러시는 글래머러스한 선정성도 없을 뿐더러,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톡톡 튀고 향기로운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약간 차갑고 이지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자제하고, 결손가정의 알코올중독 엄마 아래서 험난했던 과거를 보낸 모습으로 조금은 어둡게 등장한다.

분명히 모험수를 둔 설정이기는 하지만, 원톱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시청률은 한 드라마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지만, 재미에 있어서는 꽤 정확한 잣대다. 그런데 초반의 '콜드 케이스'는 'CSI 과학수사대'나 'FBI 실종수사대'와 같은 이른바 특급 드라마가 갖춘 요소, 즉 성격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간의 유기적인 연관성이나 탄탄한 시나리오, 극적인 요소를 잘 버무려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키는 면이 어느 시점에서 약간씩 좌절되는 모습이 없지 않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노총각 아저씨의 전형 같지만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는 'CSI 과학수사대'의 길버트 그리섬 반장이나 사생활에서 늘 말썽을 피우지만 정감이 가는 '위드아웃 어 트레이스'의 잭 반장 같은 캐릭터가 지닌 매력을 릴리 러시 역에도 씌워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 자체로 콜드 케이스로 남아 있는 그녀의 학대 받은 어린 시절도 제대로 풀어내야 하는 실타래였다. 그런 점을 천천히라도 해결할 수 있는 행운이 '콜드 케이스'에는 있었다.


'콜드 케이스'는 초장부터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신디케이션을 달성하고도 남을 시즌인 일곱 시즌의 롱런 가도를 달리면서 잔잔한 저력을 발휘하는 드라마이다. 현행 사건을 다루는 다른 수사 드라마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미해결 사건'이라는 소재의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소재가 신선하다는 것은 장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뜻한다.

 

그런 면에서 '콜드 케이스'는 초반에는 약간 더뎠더라도, 차근차근 이야기와 캐릭터의 틀을 잡아나가며 기대를 멈추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 빠를수록 좋지만, 늦더라도 억울한 사연이 해결되고 법과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은 언제나 통쾌한 감동을 안겨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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