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검사다!",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의 법정 수사물 '클로즈 투 홈'

과학수사대, 실종수사대, 해군범죄수사대, 미결사건수사대 등등 범죄와 관련된 드라마 쪽으로는 진정 끝장을 본 심산으로 덤벼드는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이 만든 법정 수사물인 '클로즈 투 홈'은 제리 브룩하이머표 양산형 수사드라마겠거니 하고 심드렁하게 넘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국 법정 드라마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다. 다음으로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몇몇 개 있고, 판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명판사 에이미' 정도의 가뭄에 콩 나듯 있을 뿐이다.

 

 

 

 

검사가 주인공인 대표적인 드라마 '로 앤 오더'도 에피소드를 양분해서, 형사가 수사를 하면 검사가 기소를 해서 재판에 가져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말이 많은 직종 순으로 드라마의 수가 정해지는 양상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인터넷 유머 사이트를 가보면, 변호사에 대한 유머는 따로 코너를 마련해 둘 정도니까 말이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지만, 예전에 국내에서 검사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국가 공무원인 검사가 권력형 비리나 가혹행위에 연루되는 일이 종종 있었던 탓이다. 나쁜 놈 잡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도 잡아야겠거니와, 억울하게 기소되는 일이 없도록 사법고시에 붙고 나서도 변호사보다 한 단계 더 어려운 과정을 밟아야 되는 것이 검사다. 그러면서도 버는 돈은 보통 변호사보다 적다. 미국도 그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주마다 다르겠지만, 각 구나 시, 주의 검사장급은 선거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국내와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각종 직업을 전문적이고 디테일하게 잘 그려내는 미국의 드라마들은 특정 직업에 대한 환상을 부추길 때도 있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을 씻어주기도 한다. 두 가지가 혼합되어 워너비가 양산되는 일도 종종 있다. 'CSI 과학수사대'를 보고 법의학 수사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야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식스 핏 언더'를 보고 장의사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고 탈옥범이 되기 위해서 감옥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이나 안 나타나면 다행이다.

 

 

 

'클로즈 투 홈' 파일럿 에피소드 프로모션 영상 

 

젊은 여검사 애너베스 체이스가 활약하는 '클로즈 투 홈'의 무대는 인디애나 주다. 큰 도시는 별로 없고, 교외의 주택가가 대부분인 곳,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곳도 인간들이 모여 사는지라 어둡고 치명적인 욕망과 범죄가 도사린다. 애너베스는 몇 년 되지 않은 경력에 거의 백전불패의 경력을 자랑하는 검사가 되어 있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유능하다고 하겠지만, 문제는 주인공의 유능함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가이다. 그 점에서 '클로즈 투 홈'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꽤 멋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검사가 주인공인 만큼, 이 드라마는 수사 과정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소의 이유를 세우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면서 다른 수사물과는 차별성을 꾀한다. 애너베스 체이스가 유능한 것은 다른 영웅적인 캐릭터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입신양명을 위해 기소와 승소에만 열을 올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형사들이 증거 찾아 데리고 온 용의자들에 대해서도 한번 더 의문을 품고, 그 과정에서 반전이 거듭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다.

 

갓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에서 돌아온 애기 엄마로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연민이 툭하면 코가 빨개지는 그녀의 얼굴 위로 떠오른다. 너무 감정적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그러한 면모를 죄와 사건을 다각적으로, 깊이 꿰뚫는 혜안으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능력도 그녀의 것이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기소될 처지에 놓인 용의자의 혐의는 씻어주되, 완전범죄 모의나 돈, 권력 등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기를 쓰는 진짜 나쁜 놈은 잡아넣는다. 기소와 승소율도 높지만, 진범을 찾아내는 비율도 출중하게 높아진다. 꽤 통쾌한 마무리를 안겨주는 것이다.

 

그런 애너베스도 질 때가 있다. 머리싸움에서는 이길 수 있지만, 피해자뿐 아니라 검사까지도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선 다윗으로 만들어버리는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돈과 사회적 지위 또는 인기, 수백 만 달러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를 앞세워 무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미국에도 많이 있다. 사실 애너베스의 기소성립률과 승소율은 지구상 사법제도가 가장 합리적이고 깨끗한 그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런 불패의 애너베스조차 무릎을 꿇는 경우가 있다.

 

 

 

'클로즈 투 홈' 시리즈 피날레 프로모션 영상 

 

여론재판이라는 게 있다. 명망 높고 부유하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더없이 깨끗한 사람이 창살 뒤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비난,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변호사들의 공세, 선거 때문에 인기를 의식하는 윗사람들이 진범 검거율을 낮추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 때로 다윗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협받는 일조차 겪게 된다. 가진 것과 숨길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공략할 때는 위험도 따르는 법이다. 애너베스라는 젊은 여검사가 이루어가는 불패의 신화 가운데 법과 정의 사이의 부조리를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 것이다. 일이 많은 것은 둘째 치고 그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애너베스의 남편은 '미디엄'의 주인공 앨리슨 드부아의 남편 조 드부아 이래 최고의 남편상을 구현하고 있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수사 드라마들은 캐릭터의 사생활을 크게 묘사하지 않는다. 수사의 진전에 치중하면서,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묘사는 자제하되 그것을 요소요소에 약간씩 배치하는 것이 스토리 구조를 더 효율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CSI 과학수사대'는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하게 금발의 눈부신 미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콜드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클로즈 투 홈'은 주인공의 사생활을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꽤 분방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사물로서는 모험을 한 셈인데, 그녀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맞아떨어지면서 공감을 주고 있다. 주립대학교 로스쿨 출신의 이 여검사는 어떨 때는 맹해 보이는 표정에 희한한 눈화장을 하고 나타나지만, 타오르는 울분과 사건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사이의 균형을 영민하게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수사물과 비슷하게 두 개 정도의 케이스를 놓고 구성되는 법정 드라마의 성별 배분이 이 드라마에서는 여자에게로 쏠려 있다. 애너베스와 경쟁적인 관계이면서도 신뢰를 주고받는 동료 검사 모린 스코필드가 있는 것이다. 또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아랑곳하지도 않고 덤벼드는 애너베스의 고삐를 쥐어주면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부검사장 스티브 샤프와 에피소드마다 돌아가면서 나오는 형사들도 가끔 유머러스한 감각을 선보인다.


이 드라마를 보면, 기소를 성립시키는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게 되는데, 샤프 부검사장이 그때마다 현명하게 조율에 나서준다. 특히 과학 수사물에 종종 등장하는 일로, 자백이나 증거가 물리적으로 오염되거나 절차상 부적합하게 판명이 나서 못 쓰게 되곤 하는데, '클로즈 투 홈'에서도 그렇다. 또 다른 적인 복잡한 절차와 싸워가며 기소와 재판을 이어나가는 과정도 '클로즈 투 홈'의 또 다른 재미다.

 

'클로즈 투 홈'은 2005년 10월 4일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꾸준하게 1,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불러 모았고, 2006년 9월 22일 시작된 두 번째 시즌 역시 금요일밤에 1,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에 전체 시청률 순위 40위 권을 유지하고, 다른 방송국의 경쟁 프로그램들을 압도하는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문제는 방송국이 CBS에 장르가 수사물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자체 경쟁력이 떨어져서 두 시즌만에 캔슬이 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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