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아이들은 철들지 않는다, LA판 남자 '섹스 앤 더 시티' 미드 '안투라지'

"운동화 신고 매달  한 번은 이발소 가며,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정의한 사내아이 이미지였다. 도저히 '사내아이'라고는 불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해도, 하루키는 그 '사내아이'라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고, 그 말의 울림이나  거기에 담긴 느낌 같은 것이 참 좋다고 '슬픈 외국어'에서 그랬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시를 네 명의 여자들이 호령하며 유쾌한 여자들의 로망을 그렸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있다. 자기 직업에 바쁜 대도시의 여피들이 실제로 그런 시간을 충분히 내서 즐길 수가 있을까만, 드라마로라도 여자 마초들의 통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시즌 6까지 이어졌고, 네 명의 여자들이 뉴욕 맨해튼을 무대로 원 없이 보는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드라마였다. "예술" 채널 HBO에 대중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프렌즈' 이후로 우정과 사랑으로 성장해 가는 친구들 이야기로 온갖 네트워크가 들썩였던 것처럼, 네 명의 여자 이야기 후에 남자친구들 이야기도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캐리, 사만다, 샬롯, 미란다와 바톤 터치를 한 네 남자는 빈스, 에릭, 조니 드라마, 터틀이다. 무대는 심술궂은 유머 감각은 죄다 반사해 버릴 것 같은 따사로운 태양의 할리우드다.


HBO에서 2004년 6월 18일 첫 전파를 내 보낸 드라마 '안투라지'는 뉴욕 퀸스 출신의 네 사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대성을 노리며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 LA로 향하는 출발을 담고 있다. '안투라지'는 1969년에 창단했으며 퀸스에 스타디움을 두고 있는 뉴욕 메츠의 팬이 아니라 곧 죽어도 여전한 뉴욕 양키스의 팬을 고수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뉴욕 토박이들이며 죽마고우인 네 남자들이 대박 스타의 꿈을 이루려 대륙을 가로질러 생면부지의 땅으로 건너가서분투를 벌인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저 어쩜 저리도 잘 놀까 싶은 천상 사내아이들의 놀고 노는 이야기의 총합이다. 이왕에 대 스타가 아닌 바에야 할리우드의 측근, 안투라지로 질펀하게 즐기고 살아본다고 해도 별 불만이 없겠고, 정말 징글징글하게 철없는 네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내놈들이란...” 하고 쯧쯧거리다가도 빛나는 위트에 끊기 힘든 재미를 느끼게 된다.

 

 

'안투라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네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빈스는 이제 막 스타덤에 오르려고 하는 젊은 배우다. 이 드라마의 수석 제작자인 마크 월버그가 '부기 나이트'로 스타가 되었던 나이다. 이 드라마는 마크 월버그가 스타가 되던 시기의 경험에 많은 부분을 기대어 이야기를 짜고 있다.

 

우선 네 명의 남자 중에 빈스 체이스의 형인 조니 드라마 체이스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 그렇다. 배우로 성공해 보겠다고 끊임없이 기웃거리지만 별 볼 일 있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며 동생에게 기대어 살지만, 덤 앤 더머 스타일의 유머로 웃음을 안겨주는 밉지 않은 캐릭터다.

 

 


 

마크 월버그의 형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으로 보이 밴드 효시의 영광을 누리다가 서글픈 몰락을 경험하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길에 절치부심하다 몇 년 전에야 드디어 CBS '블루 블러드'에서 안정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도니 월버그다. 조니 드라마 역을 맡은 배우 케빈 딜런은 맷 딜런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렇듯 드라마는 할리우드가 배경일 뿐 아니라 드라마 밖과 안을 뒤죽박죽 섞어놓으면서 극도의 현실성을 꾀하고 있다.


배우나 제작자, 감독, 에이전트 등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때로 원색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니고, 피터 잭슨,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래리 데이비드, 데니스 호퍼, 마틴 스콜세지, 에미넴, 맷 세이먼, 제시카 알바, 스칼렛 요핸슨, 제임스 카메론, 애런 소킨이 실제 자기 이름으로 등장한다.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할리우드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행태를 꽤나 노골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리얼리티 쇼의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드라마라는 게 뭘 좀 미화하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바란다면 이 드라마는 답이 되지 않을 듯하다. 마냥 예쁘고, 또는 우리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으며 품위도 좀 지키고 싶다는 바람은 거의 눈곱만치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저 정도라면 좀 질리지 않을까 싶은 할리우드의 치부를 유쾌하게 받아넘기는 네 주인공의 모습은 용하다 싶기까지 하다. 아니면 애를 써서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진짜 철이 없고 생각이 없어서 그 살벌한 경쟁판을 잘도 활보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 그들의 모습에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양쪽 다 속물적인 구석이 있기는 마찬가지이겠으되, 자기 자신이 가진 밑천만으로 진짜를 가지고 승부하지 않으면(적어도 겉으로는) 냉소하는 뉴욕과, 진짜라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나라에서 온 것이고 스타가 아니면 안투라지라도 되고 싶어 하는 이 드라마 속 할리우드의 인간들은 오히려 가짜가 훨씬 자연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들이 모인 세계에 속하고 싶어서, 아니 작은 파티에라도 초대되고 싶어서 몸에 자신이 아닌 것을 심어놓는 것까지 불사하는 이곳 사람들의 욕망은 천둥벌거숭이처럼 도리어 더 솔직하게 펄펄 뛴다. 빈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매니저이며 넷 중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에릭 처럼 때때로 상념에 잠기다가는 코 베어가기 십상인 동네가 할리우드다. 그래도 에릭은 지나치게 원칙적이지 않으면서 매니저로서 빈스의 경력과 생활에 균형을 맞추어주려고 얼추 노력한다.


빈스는 젊은 할리우드 스타답게 호랑방탕하지만 자기 것 다 버리면서 함부로 막 나갈 정도까지 어리석지는 않고, 야박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챙길 줄 아는 영민함이 있어서 에릭과 빈스의 콤비네이션은 흐뭇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실제의 스타들이 토크쇼에 나와서 보이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되는 스타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인물이다.


빈스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친구 터틀과 조니 드라마의 덤 앤 더머 콤비도 드라마의 재미를 한층 높여주기는 마찬가지인데, 참 볼 만한 이 네 명에다가 억척스럽고 살벌한 수완의 에이전트 아리 골드가 첨가되면서 '안투라지'의 캐릭터 라인은 완성형을 이뤄낸다. 아리 골드 역의 제레미 피번은 수차례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 코미디 시리즈 조연배우 부문을 독식하며 조연배우로서의 유감없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니까 혀를 끌끌 차면서 보긴 하지만 미워할 수가 없는 "사내아이들" 이야기가 '안투라지'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마놀로 블라닉의 로망을 선보였다면, '안투라지'에서 펼쳐지는 험머, 마세라티, 에스컬레이트, 벤츠 마이바흐 등 자동차의 향연도 멋진 눈요깃거리다.


'무한도전'이 재밌는 이유는 다 큰 사내들이 딱 초등학교 5학년생들처럼 노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다. 마냥 귀여운 때는 한참 지났고, 이제 뭐 좀 알아가면서 개중에는 좀 되바라진 애들도 있고 다른 애들 짓궂게 괴롭히기도 하면서 찧고 까불고 하는 얘기는 내가 당하지만 않으면 즐기면서 봐줄 수 있다.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징글징글하기는 마찬가지인 사내놈들 얘기인 '안투라지' 역시 옆에다 두고 보면 복장이 다 터지고, “제발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자막이라도 붙이고 싶지만, 혀 정도 차고 웃어버리는 것쯤은 별 손해가 없지 않을까?

 

2010년 8월 1일 여덟번째 시즌을 이후로 방송을 종영한 '안투라지'는 이후 예의 다른 인기 드라마들의 운명처럼 끊임없이 영화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2011년 마크 윌버그가 '안투라지'의 영화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했고, 2012년에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월드 투어에 가깝도록 유럽과 전세계로 촬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발언까지 나왔다. 하지만 영화화는 역시 예의 유명 드라마의 운명처럼 지지부진해졌다가, 2013년 2월 드디어 워너브라더스가 '안투라지' 제작자인 더그 엘린의 영화화 제안을 받아들여 극장판 제작에 청신호가 켜졌다. '안투라지' 극장판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예에서처럼 두 편 이상으로 제작될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치를 충분히 올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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