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단지 피부 한 겹의 차이, 메디컬 성형수술 막장 성인 미드 '닙턱'

우리 강아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솟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잉글리시 코카 스패니얼과 아메리칸 코카 스패니얼 버프를 믹스시켜 절묘하게 장점만을 뽑아냈다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커다랗고 동글동글한 눈에,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한 얼굴 윤곽,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와서 적당히 풍만한 몸매, 거기에 너무도 눈부신 크림색 털과 그 부드러운 웨이브 컬이라니. 한번은 미장원에 강아지를 같이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얘처럼 절묘하게 웨이브를 넣어 주세요" 하면서 "스타 따라하기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다. 평범한 소시민이 자기 모습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시도라고 해야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는 게 고작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우리 강아지처럼 기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져보고 싶기도 하고, 탱크톱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소매 정도는 거리낌 없이 입어봤으면 좋을 텐데 하고 하나하나 따지다가, 거울에 팔을 들어올려 비추어 보기라도 하면 한숨 한번,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다가 또 한숨 한번, 뭐 그렇게 되는 게 보통 인생이다.

 

 

 

 

그럴 때면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보면 어떨까, 칼을 댄다고 해도 마취를 하니까 통증은 없을 것이고 다 나으면 흉터조차 남지 않으니, 무에 그리 걱정이, 문제는 오로지 돈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진한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진한 유혹은 미국 드라마계의 팔방 미인 제작자 라이언 머피의 2003년작 '닙턱'을 보다 보면, 충격요법에 의한 일시적인 효과일지는 몰라도 온데간데없이 싸그리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고 해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사실적인 수술 장면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쿠스'의 검투사 칼보다 더 잔인한 것인 매스이지 않겠나?!)

 

2003년 7월 22일에 케이블 채널 FX에서 첫 방영된 '닙턱'은 TV 드라마의 수위를 실험하는 듯한 강도 높은 수술 장면과 아찔한 러브신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드라마이다. 정말이지 수술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할 만큼 사실적이며, 마이애미의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주변에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뜨거운 여자들의 모습은 플레이보이 채널을 보는듯한 아찔함이 있다.

 

 

'닙턱' 시즌5 프로모션 영상 

 

또한 라이언 머피 특유의 올드팝에 대한 감각이 드라마 전반에 걸쳐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바로 '닙턱'이다. CBS의 미해결 범죄 수사 드라마 '콜드 케이스'가 사건을 해결한 말미에 근사한 올드 팝을 선사하는 것처럼, '닙턱'에서도 수술 장면이 나올 때마다 멋진 팝송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선율 아래로 서걱서걱하는 매스 소리에 등골이 싸늘해지는 효과가 다분하다. 제목인 "닙턱(Nip/Tuck)"은 성형수술을 나타내는 은어이다. 왜 사람들이 "저거 분명히 성형수술한 거야"라고 표현하지 않고 "필시 칼을 댄 게야"라고 표현하듯, 'Nip(자르고)' 'Tuck(쑤셔 넣다)', 성형수술을 더할 나위없이 정확하게 나타낸 표현이 바로 '닙턱'이다.

 

'성형수술'이라는 판타지를 중심에 놓고 파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하면 바로 '닙턱'이라는 드라마가 나타난다. 화려한 삶에 대한 욕망, 섹스, 돈, 범죄, 마약 등 온갖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아름다워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지목되는 성형수술의 효과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각종 "메이크오버 리얼리티 쇼"와 차별성이 없다면, 과연 그것을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닙턱'은 ABC의 '익스트림 메이크오버'와 같은 프로그램, 즉 일반인들을 성형수술로 변화시키는 리얼리티 쇼의 한계와 가능성을 드라마라는 장르의 힘으로 한 단계 높은 재미를 만들어낸다. 리얼리티 쇼의 '리얼'은 드라마 '닙턱'에서는 특수효과를 통해 수술 장면에서 생생하게 거듭나고, 리얼리티 쇼의 '쇼'는 드라마 '닙턱'에서 등장인물들이 사고를 치고 극복하고, 내외적인 성장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나가는 치밀한 각본을 통해 흥미진진한 쇼로 선보이게 된다. 

 

'닙턱'의 성형외과 수술 장면은 유료 케이블 채널을 제외한 베이직 케이블 채널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신체 노출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영화를 보면 스펙터클과 감동으로 밀고 나가다가, 어느 한 장면에서 난데없이 으악, 하는 장면을 보여주곤 하는데(가령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전차에 발목이 잘리는 장면이나 '데스티네이션'에서 지나가는 기차에 파편이 튀어 목이 댕강하는 장면), '닙턱'에서는 매 에피소드마다 이런 장면이 하나씩, 둘씩 들어 있는 나머지 심장을 철렁철렁하게 할 정도다. 

 

 

 

 

또한 가장 대중적인 레벨의 캐릭터 창출에 능숙하다는 라이언 머피의 드라마인 만큼 등장인물이 매우 정이 가는 작품이 바로 '닙턱'이다. 'CSI'나 'FBI 실종 수사대' '그레이스 아나토미' 등의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맨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캐릭터 창출 능력이다. 그냥 외적인 사건만을 놓고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면, 그 드라마는 일급 내지 특급 드라마로 성공하지 못한다.

 

'CSI'에서 인물은 멀끔하나 도박이나 일삼고 다니는 워릭, 폼은 잡지만 사랑에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노총각 그리섬 반장, 반장으로서 카리스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하 직원과 바람이나 피우고 이혼이나 당하는 'FBI 실종 수사대'의 잭 반장 등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캐릭터는 사고뭉치일 경우가 많다. 바로 그렇게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들이 개인사를 해결해 나가고 그 와중에 서로 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보다 깊숙히 감정이입이 되며 흥미를 배가시킨다. 

 

'닙턱'은 이런 드라마 연출에 아주 능숙하다. 대학동창 사이인 세 친구 션 맥나마라와 크리스천 트로이, 줄리아 맥나마라, 션과 크리스천이 마이애미에 성형외과를 함께 개업하고, 션과 줄리아는 부부가 되었고, 셋은 그저 좋고 친하기만 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과 미운 정의 역사를 쌓아올린 끝에 가족처럼 되어버린 사이, 아니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으로도 가족관계로 얽혀 있는 관계이다.

 

 

'닙턱' 시즌5 오프닝 시퀀스 

 

공부는 잘하지만 약간 샌님이었던 션 맥나마라, 공부는 못했지만 초특급 오라비인 트로이 크리스천의 관계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형태의 파트너십이지만 주거니 받거니 사고를 치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고 징하디 징한 우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다분한 감동으로 그려진다.

 

또한 션의 아들인 매트 역시 많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이해심 많고, 어른스러운 성격의 평범한 틴에이저이다. 매트는 성품과는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겪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다가, 시즌 2부터는 비로소(?) 틴에이저답게 본격적으로 말썽을 피우게 된다. 션의 아내이자 매트의 엄마인 줄리아 역시 이혼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불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닙턱'의 캐릭터들은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한 초특급 울트라 시한폭탄 하나씩을 품고 있어서 늘 아슬아슬하기만 한데도, 얽히고설킨 그들의 이야기를 감당해 내는 드라마의 힘은 놀라울 정도이다. 한 마디로 "완전 초엽기스러울 수 있는 일들이 무럭무럭 일어나고, 그 상황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지만, 어쩐지 상당히 안정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데뷔 이후 안정적인 시즌을 이어가다 '카버'의 등장과 함께 드라마의 메인 갈등이 정점을 찍었던 2005년 '닙턱'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줄리언 맥마흔과 졸리 리차드슨이 남녀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TV 최고의 영예인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닙턱'도 네 번째 시즌부터 마이애미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막장의 정도가 심해지고, 점점 스토리텔링이 할리우드 간판이 솟구쳐 있는 할리우드 힐로 올라가면서 그냥 저냥 꾸역 꾸역 신디케이션을 위해 딱 100개 에피소드만을 완료한 후 시즌6의 19번째 에피소드로 종영을 맞이하게 된다.

 

현대인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가장 적나라하고 본질적으로 드러내주는 성형수술, 경제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나 외모 면에서 별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구하고자 벌이는 사투가 드라마 '닙턱'이다. 혹 비위가 약하여 잔인한 수술 장면만은 도저히 못 보시겠다는 분들은 그 장면을 살짝 피해 가셔도 이 드라마의 주제와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다. 시즌 후반부부터 브레들리 쿠퍼의 막장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거나, '왕좌의 게임'의 매력적인 난쟁이 티리온 라니스터 역의 배우 피터 딘클리지의 불장난을 볼 수 있는 것은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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