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들은 형제가 되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사는 복 받은 인생이 흔할 수는 없겠지만, 가령 전쟁 같은 상황이 있다.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 지도자나 장군 같은 사람들은 명분을 안고 싸움에 뛰어들겠고, 장교들은 군인으로서의 출세라는 동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술을 살 수 있는 나이도 되지 않은 소년들도 더러 섞여 있는 사병들과 하사관들은 퍼붓는 폭격 속에 파편을 피하자고 머리를 감싸 쥐고 참호 안에 숨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여기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나라가 침략당하는 것을 보고 애국심으로 분기했든 돈 몇 푼 더 만져서 새 삶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것이었든, 바로 옆에서 폭사하거나 팔다리를 잃고 끔찍하게 비명을 질러대는 동료들을 보면서, 혹독한 추위와 폭설에 반창고조차 모자란 타국의 황량한 고원에서 병사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그런 의문에 친절하고 장황하게 설명해 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유태인 집단 수용소의 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조지아 주 커래히 산기슭의 토코아 기지에서부터 노르망디 상륙을 시작으로 유럽 전장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어떤 공수부대 중대원들의 전우애가 이 10부작 미니시리즈가 그려내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커래히에서 받은 가혹한 훈련으로 최고 중 최고가 된 이지 중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 심지어 때로는 말도 안 될 만큼 무모한 작전에 투입된다. 능력이 출중하다 보니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욕은 다 집어쓰며 궂은 일 도맡아 하는 바로 그런 역할을 맡은 셈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중대의 이름과는 한참 거리가 먼 훈련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대원들은 꿈꾼다. 최고의 곁에서 싸우고 싶다고, 곁에서 싸우는 병사에게 자신이 최고의 전사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들이 수행하는 어려운 작전은 그들 사이의 우정을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어렵고도 고난스러운 전투의 산을 하나하나 넘을수록, 그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에서는 무적이 되어간다. 최초의 공수대원들로서 독일 점령의 프랑스 노르망디에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린다.


비행기가 폭격당해 낙하산조차 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내려가다가 총격과 폭격에, 혹은 그저 나무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만 사람들도 있다. 수가 줄어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D-데이를 준비하자며 결의를 다지던 친구들 중 몇몇의 얼굴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전투를 하나씩 겪어가며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끈은 견고해져 간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감행 이륙! 

 

10개의 에피소드 중 가장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한편 가장 참혹했던 '바스토뉴' 편에서 이 형제들의 유대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다. 적의 공격이 아니라고 해도 추위와 배고픔까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탄약은 물론 상처를 감을 붕대조차 없다.



이제 병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죽고 다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싸우는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이다. 자신이 죽으면 그뿐인 것을, 비참하게 죽어간 동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떠안고 나머지 인생을 가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에피소드 첫 부분마다 나오는 실제의 이지 중대원들은 전투에서 죽어간 친구들을 회상하며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울컥 눈물을 짓는다. 그 시절 홍안의 청년에서 호호백발이 된 할아버지가 거의 60년 동안 그들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절망밖에 남지 않았다면, 먼 훗날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라 영웅들과 싸웠다고 얘기해 주는 이지 중대원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 서로의 앳된 얼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면, 다리 하나를 잃고도 카메라 앞에서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전투와 동료들 얘기를 전하는 빌 가니어 하사도 없었을 터이다. 그들을 지켜주었던 전우애는 전장에서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세트나 소품을 십분 활용하고도 미국 TV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1억 2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는 이렇다하게 낯익은 얼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지 중대원들이라는 형제들의 '밴드'가 주인공이지, 패튼 장군이랄지, 심지어는 아주 뛰어난 전투 지휘자로 그려지는 윈터스 소령도 주인공이 아니니까 무명배우들을 선택한 것도 그럴 법한 일이다.


또 실제 인물들의 실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이 무명배우들이 표현하는 캐릭터의 깊이가 너무나 깊어서, 마치 내가 이지 중대원이 된 것 같고 이지 중대원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내 동료가 다치고 목숨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우선 별다른 장애 없이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겠거니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단숨에 고통 없이 죽는 것이 복인 참혹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짐짓 공포를 외면하고 농담을 쏟아내며 시시각각 갈리는 생사의 장면을 목도한다. 그리고 피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연결된 전우애는 너무나 잘 짜여진 드라마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감동을 남긴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