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비긴즈, '스몰빌'

2006년의 '슈퍼맨 리턴즈' 이후의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구도는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과 리부트된 스파이더맨이 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반은 '어벤저스'의 캐릭터들이 떼거리로 나눠 가져가는 양강 구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13년 디스 썸머, 이제 그 반반의 구도가 바뀐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브랜드 파워로 인해 급상승된 DC 코믹스의 원조 영웅 슈퍼맨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슈트에서부터 세계관과 성격까지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 분위기의 다크하면서도 압도적인 슈퍼맨으로 돌아온다.

 

오리지널 슈퍼맨 영화에서 분노한 클락 켄트가 슈퍼맨으로 하늘을 뚫고 솟구쳐 지구를 거꾸로 돌아 시간을 되돌려버리는 비행을 한 이래, 하늘을 난다는 능력은 제 아무리 다양한 슈퍼 히어로들이 능력을 선보여도 슈퍼맨의 비행 능력을 따라 잡지는 못 했다.

 

미국 드라마 팬들의 입장에서도 슈퍼맨이 파랑과 빨강의 원색 쫄쫄이 유니폼을 입고 제대로 하늘을 난다는 상상은 드디어 오랜 숙원 사업을 드디어 풀었구나 싶은 그저 감동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어정대지 말고 그냥 속시원하게 한번 하늘을 날아보자 싶은 그 시원한 로망의 원천을 그리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TV 드라마 시리즈 '스몰빌'이다.

 

 

 


리처드 도너 감독,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1978년 '슈퍼맨'은 유성우와 함께 우주선에 실려 지구에 도착한 슈퍼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스치듯 비켜간 후, 다 자란 후 뉴욕으로 가서 신문기자가 된 슈퍼맨 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반면 드라마 '스몰빌'은 영화가 유성우 떨어지듯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던 그곳, 클락 켄트가 지구에 도착해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마을, 이름 그대로 아주 작은 마을인 '스몰빌'을 무대로 해서 슈퍼맨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른바 '슈퍼맨 비긴즈', 즉 영화 '슈퍼맨' 1편 이전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퀼이 TV 드라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몰빌 시즌1 오프닝 

 


'스몰빌'은 현재의 CW 채널의 전신이며 '도슨의 청춘 일기' '펠리시티' 등 이른바 청춘물을 많이 다루었던 워너 브라더스 채널에서 철저하게 청소년 코드로 제작해서 방영한 드라마로서, 미국에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까지가 주 시청자 층인 드라마다. 그렇지만, 다 큰 사람들이 보기에 어이없을 정도로 엉성한 드라마는 아니거니와, 어깨에 힘 좀 뺀다고 생각하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니 사실은 30, 40대 장년층마저 서너 편 보다 보면, 슈퍼맨 클락 켄트의 앙증맞고 귀여운 방황과 갈등에 중독되어 다음에는 "섬바디 세이브 미~!" 하는 주제곡만 나오면 어느새 발가락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를 은근히 흥미로운 드라마다.


'앨리 맥빌'에서 변호사 앨리가 미성년자와 교제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정에 섰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앨리는 온라인상에서 만난 소년이 말한 나이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떻게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도슨의 청춘일기'라는데 미성년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앨리가 30대 남자들도 '도슨의 청춘일기'를 즐겨본다며 항변했을 만큼 CW의 청춘물은 애매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코드를 지니고 있다.
 

자, 이렇게 슈퍼맨 클락 켄트의 청소년기를 그린 드라마를 워너 브라더스에서 제작한다고 했을 때 설왕설래가 많이 오갔다. 심지어는 주인공 클락 켄트로 캐스팅된 톰 웰링마저 도대체 슈퍼맨의 십대 청소년기로 어떻게 몇 년씩 드라마를 이끌어간단 말인가,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청소년 드라마의 포맷을 고수했지만, '스몰빌'의 장수 비결은 바로 탁월한 구성과 응용 능력에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탁월한 벤치마킹 능력이라고 할까. '스몰빌'을 보다 보면 어째 전체적인 연출 포맷이 어디서 꼭 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스몰빌'의 전체적인 구성은 '엑스 파일'의 골격을 그대로 빌려왔다.

 

'스몰빌'에서 초능력자는 슈퍼맨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유성우가 쏟아져 내렸을 때, 마을 사람들 일부가 유성우의 영향을 받아서 각자마다 고유한 능력을 하나씩 지니게 되었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주로 클락 켄트가 다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초능력의 주인공들이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엑스 파일'이 'UFO와 외계인"이라는 하나의 중심적인 맥락에 초현실적인 미스터리 사건 해결을 곁들인다면, '스몰빌'은 '본연의 슈퍼맨 스토리'에 유성우의 영향을 받은 초능력 인간들과의 싸움이 주로 그려진다. '엑스 파일'이 무슨 일이 있어도 시즌 프리미어와 피날레만은 팍스 멀더의 외계인 코드로 일관하는 것처럼, '스몰빌' 역시 시즌 프리미어와 피날레만큼은 클락 켄트의 슈퍼맨 성장기로 못을 박는다. 아니 프리미어와 피날레에 몰아주기식 제작 행태는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엑스 파일'은 그래도 각 에피소드당 제작비를 적당히 분배하는 참을성과 공정함이 있었던 반면, '스몰빌'은 어차피 들통 난 “엑스 파일 벤치마킹” 전략인 만큼, 가운데 스무 개쯤 되는 에피소드에는 최대한 제작비를 아끼고 또 아껴서, 시즌의 시작과 끝에 남은 제작비를 몽땅 다 쏟아 붓는 “모 아니면 도” 전술을 쓰고 있다. 매번 클리프행어로 끝내면서 시청자들을 망연자실케 했던 '엑스 파일'의 시즌 마무리를 '스몰빌'은 그대로 빌려온다.

 

구조상으로는 가히 '엑스 파일'의 청소년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연출의 정도와 장난기에 있어서는 오히려 '엑스 파일'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멀더를 그토록 괴롭히던 시가렛맨을 기억하는가? 그가 게스트 출연을 하기도 한다.

 

 

 

 

골격을 '엑스 파일'에서 그대로 빌려온 반면, 캐릭터는 만화와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슈퍼맨이 영웅으로서의 제 본분, 지구를 구하고 제 종족을 보존한다는 본분, 그러니까 클락 켄트가 아니라 조-엘의 아들 칼-엘의 정체성에 순순히 따른다면, 드라마 속 십대로 등장하는 클락 켄트는 애초에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클립톤 행성에서 조-엘이 보낸 파괴자 칼-엘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갈등이 많다.

 

'스몰빌'의 클락 켄트는 몇 시즌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끝은 어디인지도 아직 미처 모른다. 처음 시작하고 몇 시즌 동안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클락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조절하는 데 미숙하여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가령 눈으로 불을 쏠 줄 아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강약 조절을 하지 못하여 흥분만 하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기도 한다. 짝사랑하는 소녀를 만났다가는 여지없이 방화범이 되고 만다.

 

그러한 모든 것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원치 않게 부여받은 정체성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 '스몰빌'의 클락 켄트에게서 드러난다. 게다가 틴에이저면 재미 볼 일이 좀 많은 때가 아닌가. 종종 속이 상할 만도 하다.

 

 

 

'스몰빌' 역대 최고 장면 7!! 

 

또 '스몰빌'에서는 렉스 루터마저 악당으로서의 제 정체성을 세우지(깨닫지) 못한 모습으로 나온다. 젊은 렉스 루터는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겠다는 선한 의도로 유성우에 영향 받은 사람들을 실험하고 약을 개발하며 클락 켄트와는 심지어 우정까지 나누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려는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유혹과 타협한다는 것이 영웅이 되기에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된다. 자의적으로 대의를 설정해 놓고, 그에 따라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사람은 결코 평범함의 선을 넘을 수가 없다. 자신 안에 있는 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괴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영화에서는 자동차를 역기 삼아 들어올리는 아기 슈퍼맨을 발견하여 키운 양부모가 무지렁이 늙은 농부 부부로 나오지만, '스몰빌'에서는 합리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젊고 현명한 부부가 클락의 부모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거의 이름만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던 클락의 첫사랑 라나 랭도 제 스스로 어떤 거대한 비밀과 음모의 적극적인 주역으로 역할을 하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슈퍼맨'의 주연이었던 크리스토퍼 리브와 로이스 레인 역의 마곳 키더도 우정 출연하여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기도 했다.

 

 

 

 

'스몰빌'의 클락 켄트, 하면 또 살인순박미소를 빼놓을 수가 없다. 라나를 볼 때마다, 부모의 말에 동의하며 순종할 때마다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시청자들 웃겨보자는 의도는 아닐 텐데,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게 한다. 시즌이 흘러가며 클락 켄트가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알아갈수록, 그 살인순박미소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클락 켄트가 아니라 슈퍼맨, 칼-엘로서의 정체성을 알아나가는 이야기는 '스몰빌'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 포인트다.

 

'스몰빌'을 통해서 알게 된 슈퍼맨의 성장 과정 속 클락 켄트는 그랬다. 순박하고 착한 미소의 시골뜨기 청소년이자 천성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태어난 듯한 소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심성 바른 아이다.

 

'슈퍼맨' 스토리야 '슈퍼맨 리턴즈'의 시작일 뿐이었고, 2013년 할리우드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프 스틸'을 필두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철 사나이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복제 재생산될 게 확실하다. 하지만 여전히 슈퍼맨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는 '스몰빌'을 능가하는 재생산은 불가능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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