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갠돌피니 장례식, '소프라노스'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체이스의 유고사 전문을 공개합니다

지난주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죽음으로 전세계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던 HBO 인기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 제임스 갠돌피니의 장례식이 현지 시간 6월 27일 목요일 오전 10시 뉴욕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치러졌다.

 

갠돌피니의 장례식에는 크리스토퍼 역의 마이클 임페리올리, 토니의 삼촌 주니어로 등장했던 도미닉 치아니스, 닥터 제니퍼 멜피 역의 로레인 브라코, 딸 메도우 역의 제이미 린 싱글러, 폴리 역의 토니 시리코 등의 '소프라노스' 출연진과, 스티브 카렐, 알렉 볼드윈, 마샤 게이 하든 스티브 부세미, 줄리아나 마굴리스, 마이클 리스폴리 등의 스타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의 유고사는 '소프라노스'의 크리에이터이자 제임스 갠돌피니의 친구이기도 했던 데이비드 체이스가 맡았다. 힛픽스에서 공개한 데이비드 체이스의 유고사 전문을 공개한다. (번역에는 전문번역가 은살살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고마워 여보! 원고지 30매도 넘는 분량인데. 덕분에 갠돌피니 형님 천국에서 '소프라노스'에서 그렇게 좋아라 했던 오리랑 말이랑 개랑 동물 친구들 다 만나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거야!)

 

 

 

 

친애하는 지미,

 

가족 분들께서 자네 장례식에서 유고사를 해줄 것을 내게 부탁하셨다네. 더없이 영광이고 감사드리는 마음이 들었어. 나는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어. 그리고 누구도 아닌 자네만큼은 내 두려운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네. 미용실에서 전화를 받았던 나흘 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야. 자네를 사랑하기에 잘해내고 싶었고, 자네가 잘해냈기에 나도 잘해내고 싶군.

 

자네 인생에서 배우와 예술가로서 쌓은 업적을 말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하니 중압갑이 들었네. 다른 분들은 자네의 다른 부분, 아름답고 멋진 면모를 아름답고 멋지게 말해줄 테지. 아버지, 형제, 친구로서의 자네란 사람을 말이야. 나는 자네가 아꼈던 동료 배우들, 자네가 너무도 아꼈던 스탭들, HBO와 저니에 계신 분들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섰다고 들었어. 오늘 내가 그들 모두와 자네를 위해 할 말을 할 수 있기를 비네. 

 

이런 일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고 다녔더니, 전문가들께서 적당한 농담과 자네와 겪었던 재미난 일화로 말문을 열라고 하더군. '하하하' 하지만 자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로, 그러고 싶은 느낌이 오지 않아. 나는 더없이 슬프고 비탄으로 가득 차 있다네. 내가 지금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건 자네의 조언을 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야. 자네가 사람들 앞에서 연설 같은 걸 할 때면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기억이 다 나니까. 그 숱한 시상식 자리에서 자넨 항상 두어 가지 생각을 휘갈긴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나타났지. 하지만 종이에 써왔던 건 입에 올리지도 않았잖아. 그러다 보니 자네의 연설은 말이 안 될 때가 아주 많았다고. 내가 자네가 했던 그런 짓을 이곳에서 하게 생겼네. 단 자네의 경우는 말이 안 되는 말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 자네의 감정은 늘 진짜였으니까. 감정이 진짜였다. 감정이 진짜였다. 몇 번을 얘기해도 입이 아프지 않을 말이군.

 

전통적이고 뻔한 추도사를 써보려고도 했어. 하지만 무슨 형편없는 TV 쇼처럼 글이 나오더군.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하고, 이제 자네 앞에서 읽으려고 하네. 하지만 문상객들도 들으시라고 하는 얘기니 사람들의 조언대로 농담으로 웃기게 시작하는 걸 한번 시도나 해보려고 하네. 재미있으면 좋겠어. 자네와 내게는 재미있는 일이었으니까.

 

 

시즌 4였나, 5였나에서였지. 자네가 세트에서 스티브 반 잰트와 한 씬을 찍을 때였어. 내 기억으로는 아마 토니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일이 토니에게는 곤경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 대본에 씌어 있기를, "토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고 나서 말한다." 카메라가 돌고 자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세게 쾅 닫았어. 하도 세게 닫아서 다시 열려버렸지 않나. 다시 쾅 닫았는데, 또다시 열렸지. 자네는 계속 닫고, 닫고, 또 닫으면서 그 냉장고에 아주 꼭지가 돌아버려서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어. 

 

나는 뭐가 웃겼느냐 하면,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으니까 냉장고 문이 열린 채로 그 장면을 연기해야 했는데 스티븐 반 잰트가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생각해보려고 입술을 내밀고는 "난 어쩌지?"라고 말했던 거야. "우선은 실비오로서, 왜냐하면 그가 방금 내 냉장고를 망가뜨려 버렸으니까. 그리고 배우 스티븐으로서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냉장고 문이 열린 채로 장면을 찍게 생겼잖아. 누가 그런 짓을 해?" 그러고는 냉장고로 가서 문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닫아보려고 애썼지만 안 됐어. 그래서 우린 마침내 컷을 부를 수밖에 없었고, 냉장고 문을 고치려고 했는데 될 리가 없었지. 조명에 쓰는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그게 종일 말썽이었던 거야. 자네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 "아, 이 역할, 이 역할이 나를 끌고 가는 곳은 참말 어둡네." 내가 말했어. "내가 자네더러 냉장고 고장내라고 했나? 대본에 '토니가 냉장고를 망가뜨린다'라고 써 있어? 대본에는 '토니가 화가 나서 냉장고 문을 닫는다'라고 씌어져 있지. 그게 대본에 나와 있는 거야. 냉장고를 망가뜨린 건 자네라고." 

 

 

제임스 갠돌피니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 가족, 유명인들

 

 

또 다른 기억이 있는데, 시즌 아주 초반이었던 것 같아. 파일롯 때였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네. 우리는 그 덥고 습한 뉴저지 여름의 열기 속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지. 자네가 뭐하고 있나 봤더니, 알루미늄 비치 체어에 앉아 바지를 무릎까지 말아 올려놓고 있더라고. 까만 구두에 까만 양말을 신고, 머리에는 젖은 손수건이 얹혀 있었네. 난 그런 자네를 보며 생각했지. "꼴이 저게 뭐람." 하지만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충만한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내가 제대로 된 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내가 자네에게 이렇게 말했잖나. "우리 아버지 이래로 저런 모습 처음 보네. 우리 이탈리아인 삼촌들이 그랬고, 우리 이탈리아인 할아버지가 딱 그랬지." 그분들도 뉴저지의 같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네. 그분들은 석공들이었고, 자네 아버지는 콘크리트 바르는 일을 하셨지. 이탈리아인들과 시멘트 사이의 인연이란, 참. 그리고 나는 우리 이탈리아의 유산이 정말 자랑스러워. 자네가 우리의 유산을 몸소 시연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자랑스러웠지. 

 

내가 자네를 내 형제라고 말한 것도 위에 말한 것과 큰 상관이 있지. 이탈리아계 미국인, 이탈리아 노동자, 건설자, 그 뉴저지적인 것 있지 않나. 그게 무슨 뜻이건 간에 말이야. 같은 계급 안에 있었던 우리, 내가 비록 자네보다 나이는 많지만 난 항상 그런 것을 느낀다네. 우리가 형제라는 걸 항상 느낀다네. 그런 감정은 정말로 바로 그날 그 일 때문에 생겨난 거라 생각하네. 나는 우리가 진행하고 있었던, 이제 막 닻을 올리려 하는 위대한 항해의 모든 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어.

 

 

또 우리 둘은 취향이 다르면서도 둘 다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있었지. 가족, 일, 음식, 술, 수다 떨기, 화내기, 불완전한 그대로의 사람들, 그리고 온전하던 것을 무너뜨리려는 욕망까지. 정말이지 우리는 서로 참 재미있었어.

 

내 삼촌들과 아버지의 이미지를 자네와 내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지. 이 남자들, 자네의 아버지를 비롯해서 이탈리아에서 온 이 남자들은 천생 남자들이거든. 그리고 자네는 자네 자신과 연기에 대한 믿음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속이 상해 있었지. 자네와 내가 허드슨강 둑에서 만났을 때 자네가 말했지.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세요? 남자가 되고 싶어요. 그거뿐이라구요. 남자가 되고 싶은 거." 참으로 이상한 말이기도 하지, 자네만큼 남자 같은 사람이 어디 있었다고. 자네는 내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남자들이 바라는 식으로 언제나 늘 같은 자리에서 사내였네. 

 

내가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늘 느끼던 것이었지만, 남자로서 자네의 모습에는 패러독스라고나 할까, 그 안에 어린 소년이 숨어 있다는 것이었어. 자네는 아주 소년 같았어. 인류와 지구 위에서의 인생이 정말로 열리기 시작하며 온갖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영광 속에서 쇼를 펼치기 시작하는 걸 목격하는 소년. 나는 자네에게서 또 슬픈 소년도 보았네. 신기해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사랑스러운 소년, 그런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소년. 그게 전부 자네의 눈 속에 담겨 있었다네. 나는 그게 바로 자네가 위대한 배우인 이유라고 생각해. 안에 들어 있는 바로 그 소년 때문에 자네는 위대한 배우였어. 자네의 연기는 어린아이가 반응하는 것 같았어. 물론 자네는 똑똑했지만, 자네를 위대한 배우로 만든 건 그 어린아이 같은 반응이었어. 그 어린아이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 세상 돌아가는 방식도 알기 전, 지성을 갖추기 전의 어린아이야. 단순한 감정 자체이고, 복잡하지 않고 순수하지. 그리고 내 생각에 자네의 재능은 사람들과 우주에 아이처럼 어마어마한 흡입력으로 빨려들어 가고, 거대하게 불 밝히는 빛처럼 나머지 세상을 비추었다는 점이야. 그리고 오로지 아이같이 순수한 영혼만이 그런 일을 정말로 잘해 낼 수 있다고 나는 믿네. 그게 바로 자네였어.  

 

 

그리고 세 번째 남자가 우리 사이에 있지. 자네와 나와 그 세 번째 남자가 있는 거야.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잖은가. "토니 소프라노. 왜 우리는 저런 꼴통을 그토록 사랑했는가?" 내 이론으로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어린 소년을 보았던 거야. 그 어린 소년을 느끼고 사랑했고, 소년의 사랑과 아픔을 느꼈던 거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해낸 게 다름아닌 자네야. 자네는 착한 소년이었어. 자네가 상이용사 자선 모임인 운디드 워리어스(Wounded Warriors)에서 한 일이 그중 한 예였지.

 

그리고 이제 뭘 좀 말해볼까 하네. 사람들 앞에서 이 얘기를 해주기를 자네가 바라니까 할 말이 있어. 토니 시리코의 노력을 누구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그는 '소프라노스'를 하는 내내 늘 자네 곁에 함께 있어 주었고,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얼마전에 자네가 내게 말하기도 했었지. "내가 아니라 토니에 대한 얘기 같다니까요." 그리고 나는 자네를 알고, 자네가 토니 시리코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주기를 바랄 것임을 알아. 그러지 않으면 자네가 섭섭해할 테니까.

 

사람들은 토니 소프라노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그는 더 어두워졌다고. 사람들의 이런 오해가 나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아. 그는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 그리고 자네도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많이, 더 열심히, 때로는 지나칠 만큼 노력했어. 저 냉장고 얘기가 일례지. 자네의 노력이 자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집어삼킬 때도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네는 노력했어. 그러고는 자네가 길에서 낯선 사람들, 팬들과 사진기자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친절했는지에 생각이 미친다네. 참을성 있고 사랑스럽고 내밀하다가, 너무 애썼다 싶으면 툭 끊어지고 말았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읽는 건 물론 그 팩, 하고 끊어졌을 때뿐이야.
 
배우로서 자네에 관한 얘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했던 쇼와 그 쇼를 어떤 것이었는지 말해보려고 하네. '소프라노스가'가 매 에피소드마다 한 노래로 끝낸 건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해. 그게 나와 다른 작가들이 합심해서 생각해 낸 마무리 방식이었지. 천재들의 언어인 음악의 힘을 빌자는 것 말이네. 그래서 지금 이 현실이, 자네가 떠난 것이 혹여 하나의 에피소드라면, 노래로 끝이 나야 하겠다고 생각했네.

 

 

조안 오스본 'One of Us' 

 

내가 생각하기로 그 노래는 조안 오스본의 "(What If God Was) One Of Us?"가 되어야 할 것 같네. 자네는 이 구상을 듣지 못했지. 그 장면에서 토니는 어쩌다가인지는 몰라도 어느 초원에서 길을 잃었어.  차도 없고 지갑도 없고 차 열쇠조차 없어. 어쩌다 그가 그곳에 갔는지조차 나는  잊었어. 어쨌거나 주머니는 잔돈 몇 개만 있지. 수하들도 없고 총도 없어. 그리하여 마피아 보스 토니 소프라노가 죽을 힘을 다해 곤경을 벗어나서 여느 사람들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 있게 되는 거야. 어떻게 찍을 생각이었느냐면, 토니는 버스에 오르고 조안 오스본의 가사가 흘러나오는 거야. 여기에 노래를 불러줄 조안 오스본이 없으니, 가사로 대신해볼까 하네. 

 

If God had a face
what would it look like?
And would you want to see
if seeing meant you had to believe?
And yeah, yeah, God is great.
Yeah, yeah, God is good.
Yeah, yeah, yeah.
 
토니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고, 버스가 디젤 연기를 잔뜩 뿜으며 출발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나올 거네. 


What if God was one of us?
Just a slob like one of us?
Just a stranger on the bus
trying to make his way home.
 
자네의 얼굴 위로 노래가 연주될 거네, 지미. 하지만 그때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 버리지. 나는 이제 지난 주에 있었던 일 때문에 새로 고쳐 써야 해. 그리고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게 내버려둘 셈이네.

 
Just trying to make his way home
 Like a holy rollin’ stone
 Back up to Heaven all alone
 Nobody callin’ on the phone
 ‘Cept for the Pope, maybe, in Rome.

 

- 사랑하는 데이비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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