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살인이요, 특기도 살인! 멈출 수 없는 살인 충동, 미드 '덱스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는 냄새를 수집하려고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이 있다. 개보다 예민한 후각의 소유자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지상 최고의 향기를 제 것으로 만들고자 아무 가책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왜 가책이 없느냐 하면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이나 분노 때문에 저지르는 살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그루누이에게 감정은 살인의 동기와 목표가 아니다.

 

그루누이는 냄새를 수집한다.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덱스터는 피를 수집한다. 쇼타임 채널의 드라마 시리즈 '덱스터'의 주인공 덱스터도 타고난 살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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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덱스터에게는 그루누이에게조차 있는 살인의 동기라는 것이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죽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살해 본능이 있을 뿐이다.

 

덱스터는 무언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절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도 살인 본능을 해소하는 동안에 아무런 감정과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루누이와 다를 것이 없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다면 애초에 살인을 저지를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증오와 분노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너무도 다급한 본능을 해소하는 살인이라 가책도 물론 없다. '덱스터'는 그런 취미이자 특기로 살인을 선택한 연쇄살인자의 이야기이다.

 

 

 

 

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는 쌔고 쌨다. 하지만 주인공이 백이면 백, 형사나 법의학자, 검사일 뿐이다. 한 편이나 한 권에서 끝낼 수도 있는 영화 또는 소설책이 아니라, 장거리 코스를 밟는 TV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적어도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법은 없었다. '덱스터'는 그런데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는, 정확히 말해서는 연쇄살인범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바로 위에서 아무런 살인의 동기도 죄의식도 없다고 말해 놓고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연쇄살인범이라니, 정의의 복수가 떠올라야 할 시점이다.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수사물에서도 인면수심의 악당만을 골라 처치하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덱스터는 그런 '선의'를 지닌 악당이 아니다. 정의의 복수는 이 드라마가 택하기에는 너무 쉽고 뻔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는 아무나 골라 죽이지 않고, 가장 극악한 범죄자만을 처단하는 것일까?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덱스터는 '평범한' 사회 부적응자 또는 '평범한' 범죄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덱스터의 양아버지는 여느 부모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마도 살해 본능을 키우는 데 일조한 엄청난 사건으로 친부모와 떨어지게 된 덱스터를 세 살 때부터 맡아 키우게 된 양아버지는 이 어린아이 속에 숨은 끝이 결코 보이지 않는 어둠을 알아본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고, 양아버지 덕분에 그 후로도 아무도 알아챌 수 없게 된, 너무도 텅 비고 어두운 공간. 남들이 희로애락, 갖가지 욕구, 도덕 감각 등 온갖 것을 구겨 넣는 그 공간이 덱스터로서는 완벽하게, 궁극적으로 텅 비었던 것이다. 그에게 살해와 피에 대한 욕구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양아버지는 알아챘다. 이대로 자라다가는 사랑하는 양아들이 전기의자에 앉는 것 말고는 다른 운명을 맞이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덱스터를 교육하기로 결심한다.

 

 

덱스터 시즌1 프로모션 영상

 

 

우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화낼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연습을 시킨다. 양아버지의 훈련이 효과를 거두어서, 덱스터는 아주 별종으로는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게 된다. 이른바 사회성 훈련이 첫 단계였던 셈이다.

 

자, 이제 살해 본능이다. 양아버지  해리 모건은 덱스터가 그 본능을 절대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총칼을 놀리고 다니다가는 단번에 인생 종 치고 말 것임도 당연히 알았다. 그래서 해리 모건은 아들에게 살인 교육을 하기 시작한다. 덱스터는 그들이 왜 나쁜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죽이려거든 양아버지가 말하는 극악무도한 인간만 골라 죽여야 한다는 기준을 세울 뿐이다.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 가령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분노나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증오처럼 자신의 범행을 자기 자신이라도 합리화할 능력이 덱스터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들의 살해 본능을 없앨 수 없음을 안 아버지는 본격적인 살인 교육을 시작한다

 

 

완전범죄를 도모해야 한다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양아버지의 가르침은 필수적이었다. 아들이 잡혀서는 안 되니까. 왜 이 아버지는 아들을 그토록 잘 알면서도,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취했을 방도를 취하지 않았까? 왜 호되게 혼을 내면서 욕구를 제압하려 한다거나, 정신상담을 하게 한다거나 하지 않고 도리어 살인을 공모하는 역할을 자처했을까? 지나치게 왜곡된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러기에 여느 부자 관계와는 달리, 덱스터의 아버지는 아들을 무척이나 잘 알았다. 경찰이었던 그가 법으로 찾아내거나 제압하지 못하는 범죄에 느끼는 무력감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점도 주의를 둘 만하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죽어 마땅한 파렴치한을 제 손으로 처단하지 못하는 무력함에 대한 보상을 아들에게서 찾으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아들에게서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은 드물지 않다. 사실 덱스터는 양아버지 해리 모건의 해방구였는지도 모른다. 양아버지와 양아들 사이라는 점과 더불어, 그들의 관계에 의구심을 품게 할 만큼 미묘했던 표현과 영상은 '덱스터' 연출진의 힘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피에 굶주린 덱스터가 선택한 직업은 마이애미 데이드 경찰서에서 일하는 혈액 전문 법의학자이다. 같은 곳에서 양여동생이 형사로 일하고, 덱스터는 다른 형사들이나 랩의 분석가들과도 거의 아무 문제가 없이 잘 지낸다. 칠흑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덱스터의 텅 비고 극단적으로 어두운 내면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독스 형사만 빼고는. 심지어는 여자친구도 있다. 여자친구의 두 아이는 덱스터를 아주 잘 따르고, 덱스터는 아이들을 잘 다룬다. 혼자 살면서 밥도 열심히 해먹는다. 하지만 그것은 주간의 일일 뿐이다.

 

 

덱스터 마지막 시즌인 시즌8 공식 트레일러 

 

 

밤이 되면 덱스터는 경찰 내부에서 얻은 정보로 연쇄살인범 사냥에 나선다. 덱스터에게 그것은 갈급증이다. 그는 범인이 경찰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자기가 처치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용의주도하게 일을 처리한다. 다시, 덱스터에게 연쇄살인범 수십 명을 살해하는 것이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된다는 자각 내지 합리화 따위는 없다. 그는 그들의 혈액 샘플을 모아 자기 집 LG 에어컨 케이스 뒤쪽에 하나하나 고이 모아놓는다.

 

강력한 주인공에게 강적이 없으면 섭섭할 일이다. 가령 시즌1에서 희생자의 피를 전부 뽑아버려 피에 관해서는 아무런 증거도 남겨놓지 않는 아이스 트럭 킬러가 덱스터를 살인 게임에 초대한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갈수록 덱스터는 다급해지고, 시즌 말미의 긴장감도 극에 달한다. 경찰은 열심히 수사를 하지만, 시청자에게는 덱스터와 아이스 트럭 킬러간의 대결이 초점이 될 뿐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성이라는 것이 없는 덱스터 같은 존재는 사람들이 어쩌다 한번씩 싱겁게 꿈꾸어보다 마는 판타지이다. 그에게는 고통이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건 간에 진정으로 외톨이인 덱스터 역의 마이클 C. 홀은 심하게 천연덕스러울 만큼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종종 유치함에 빠질 수도 있는 판타지가 그의 내레이션을 통하면 설득력이 생긴다.

 

'식스 핏 언더'에서도 꼭 게이라는 정체성만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맡은 데이빗이라는 인물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낸 그였기에 '덱스터'를 보기 전부터 기대해도 좋을 일이었다. '덱스터'는 팀워크라기보다는 오로지 마이클 C. 홀을 위한 드라마이다. 그는 '덱스터'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으로 프라임 타임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AMC의 불세출의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연배우인 브라이언 크랜스톤에 밀려 단 한 차례 수상에 그친다.

 

제프 린제이의 소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를 원작으로 했지만, 시즌1부터 이미 주변 인물과 그들의 역할이 첨삭되거나 해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있었고, 이후 시즌2부터는 소설을 원작으로 삼지 않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드라마를 이끌어갔다.

 

시즌5까지 상당한 긴장감과 상당한 몰입감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즌6에서 다소 어이없는 설정과 스토리로 여러 시청자들이 등을 돌렸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정도야 여느 롱 텀 드라마에서나 있기 쉬운 일이고, 이후 점차 회복세로 돌아선 '덱스터'의 평가와 시청률은 2012년 9월 30일 시작된 '덱스터' 시즌7 프리미어 에피소드에서 3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 기록을 세우며 자체 최고 스코어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숱한 루머 이후 2013년 4월 쇼타임은 드디어 '덱스터'가 시즌8로 시리즈를 종영하게 된다고 공식 발표한다. 사실 지난 7년 여의 동안 너무도 대범한 살인 행각을 저지르고 다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을 속일 수 없게 되면서, 덱스터 모건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예상이 됐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8년 여의 기나긴 연쇄살인 행각의 마무리가 될 '덱스터' 시즌8은 2013년 6월 30일 시청자들 앞으로 컴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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